나는 마음이
관리자 2020-09-11 18:15:20 2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11:29)

 

찬송가 538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알고

정확하게 아는 것이

너무 큰 축복입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은

예수를

알고 싶어하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하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그렇게 알려고 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충 알아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렇게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단은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습니다.

 

또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일들을

해내기도 바쁩니다.

 

눈 코 뜰새가

없이 분주합니다.

 

우리의 습관이

대충 빨리

많이 일하는 것에도

익숙해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마음이 바쁩니다.

 

많은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욕심이 있다보니

눈에 보이는 일들을

더많이 하고자 합니다.

 

그러다보니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왜 그럴까?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럴 여유도 없고

그런 마음 조차도

갖고자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깊이 생각해야 할까요?

 

우선

당장 먹고 사는데도

힘겹고 어려운데

 

무엇을 깊이

골똘이 생각을 한다는 것을

사치스럽게 여깁니다.

 

또 당장에

눈에 보이는 현실 또한

관심의 대상입니다.

 

현실에 관심을 갖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또한 반복되는

늘 일상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도

나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다보니

어느 한 부분을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지 않는 한

깊이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분주하여도

깊이 생각해야 분이 계십니다.

 

아무리 급히

당장 처리해야 일이 있고

 

또 현실에 충실하게

반복되는 일상과 일정을

소화시켜야 한다고 해도

 

꼭 깊이 생각해야 할

우선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3:1)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닙니다.

꼭 꼭 꼭 해야 합니다.

 

차차 시간이 여유가 있고

일상의 생활이 여유가 생기면

 

그 때 하겠다는 것은

정말 위험 천만한 발상입니다.

 

차차 시간의

여유가 생길 것 같은데

꼭 생긴다고 보장하지 못합니다.

 

또한 미루어서도 안됩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것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나중으로 미루어서는

결코 아니됩니다.

 

지나치고 과장해서

언급해 하자면

 

밥을 못 먹는 한이 있어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하고

 

잠을 못 자는 한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구신가?

생각해야 하고

 

오늘의 일상과 일정을

다 못 소화시키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역사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 그렇구나

이래서 그 일을

예수님이 막으셨구나

 

이래서

주께 부르짖어 간구해도

 

예수님이

대답하시지 않는구나

 

우리는 막으시고

아무런 대답도 없으신

예수님 때문에

답답해 하지말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예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마음이

고약하고, 괴팍하고,

완고하고 교만합니다.

 

나는 마음이

자만하고 거만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예수님을 잘 몰라서

금방 고약해지고

금방 교만해집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조금 잘해서 잘한다는

칭찬을 듣거나 인정을 받으면

 

금방 우쭐대고 의시대면서

안하무인이 되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생활을 하고맙니다.

 

얼마나 거만하고

교만해지는지

진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피조물이

마치 천하의

주인행세를 하기도 하고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권세가 있는 자로

착각의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오해하여

도무지 예수님을

만날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을 몰라서

 

마음이 완고하고

교만해서 생기는 결과물입니다.

 

예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나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이 굳어지고

마음이 높아져서

 

하늘 높은 줄 모릅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곧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인 것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의 주관자이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복 주시는 분임을

알지 못하고 섬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소개해주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비아냥거립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마음이

온유하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 것이

 

마음이

온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마음이 온유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는

마음이 겸손하니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완수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살기보다는

 

죄인을

위하여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마음이 겸손하니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도

끝까지 받아들이셨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는

어떤 고통의 짐도 달게 지셨고

 

어떤 비참하고

처참한 상황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의 멍에는 뭘까요?

최종적으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입니다.

 

과정속에서는

 

자기의 사명을 위해

자기를 알려주고

자신이 누구신지?

 

왜 이 땅에 비참하게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는지?

정확히 아시고

그것들을 피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을

멍에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예수의 멍에를

그대로 메야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예수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고

 

예수와 함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에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배워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두 분도 아니고요

오직 한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외에는

배울 분이 없습니다.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사명따라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끝까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온전히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고

가야할 그 길로

가시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명따라 소명따라 가십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마음이 안식을 얻고

참 평안을 누립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요 결과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마음이 고달프지 않습니다.

마음이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마음에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욕심에서 자유하고

놓임받는 것이 참된 쉼입니다.

 

쉼이란 욕심에서 풀려나고

자유하게 되는 것이 쉼입니다.

 

욕심에서 해방되고

더이상 죄에서

종노릇하지 않는 것이 쉼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죄로부터의 해방

곧 풀려남이 쉼입니다.

 

사망으로부터

걸거덕 거림이 없는 것이

참된 쉼입니다.

 

너희 마음이

쉼을 얻는다는 것은

 

천국을 경험하는 것이요

천국을 누리는 것이요

천국을 맛보는 생활입니다.

 

마음이

쉼이 없는 것은

지옥생활이지만

 

마음이

쉼이 있는 것은

천국생활입니다.

 

마음에

쉼이 없는 것은

지옥입니다.

 

반대로

 

마음에

쉼이 있는 것은

천국입니다.

 

지옥과 천국은

 

우리가

욕심을 따라 사느냐?

예수를 따라 사느냐?

결정이 됩니다.

 

욕심을 내버리고 계십니까?

의심을 다버리고 계십니까?

 

욕심을 내버리고

예수를 영접하십시오.

 

의심을 다버리고

구주를 영접하십시오.

 

오늘도

예수를 믿고

예수를 배우면

마음에 쉼을 얻어

천국생활을 만끽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2020.9.7.월 김홍재목사


       
이는 관리자 2020.09.11
수고하고 관리자 20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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